최신기사

서울패션위크를 말한다,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유재부 대변인 [인터뷰]

기사입력 2013.04.15 07:10:03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지난 3월 30일 2013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가 끝났다. 여의도 IFC서울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총 6일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70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치렀다. 이는 2000년부터 시작된 통합 서울컬렉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한편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경우 IFC서울 54층까지 올라가야 했고, 유명인 때문에 쇼가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더욱이 일반인 관람객들은 끝없는 대기 속에 아예 쇼를 보지 못해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처럼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의 패션쇼를 마쳤다는 안도감과 또 여러 우려 속에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Korea) 대변인 유재부를 만났다.

“우선 쇼 내적인 부분에서 학계의 참여라든지 혹은 미디어의 비평을 찾기 힘든 부분이 아쉬웠어요. 결국은 1년에 두 번 열리는 거잖아요. 가령 모든 디자이너가 참여할 수 없다면 반드시 기준과 이를 설명하는 비평이 있어야 해요. 만약 선정 기준이 단순히 돈을 얼마 벌었다고 본다면, 디자인은 떨어지지만 박리다매로 파는 사람들이 선정되는 문제가 생기겠죠. 또 어떤 사람은 작품은 뛰어나지만 고가로 판매를 조금만 할 수 있어요. 따라서 단순히 매장 수가 몇 개냐 같은 수치보다는, 저 사람은 옷을 만드는 게 객관적으로 얼마큼 창의적이고 독특한지 살펴봐야 해요”

한편 외국은 쇼가 끝나면 유명 일간지에 몇 페이지에 걸쳐 이에 관한 기사가 등장하는 반면, 우리는 쇼에 대한 언론의 비평보다는 단순한 행사소개나 연예인 참석 여부 그리고 디자이너의 인사말 그친다는 지적에 대해 물었다.

“뉴욕이나 파리를 가면 디자이너들이 광고해요. 이번 서울 패션위크 디자이너 중에 광고하는 디자이너는 아무도 없었어요. 가령 보그나 바자 등의 패션잡지에 광고하는 분도 없죠. 그러니 광고주와 광고주가 아닌 이가 기사에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만약 디자이너들이 자본력이 쌓여서 광고하고 연합회에서도 광고비를 책정하면 쓰지 말래도 기사를 쓸 거예요. 서울시도 앞으로 서울패션위크를 활성화 시키려면 외국이 아니라 국내광고에 더 집중해야 해요. 그래야지만 언론도 뛰어드는 거지. 그것도 없이 관심을 보여 달라는 건 어쩌면 무책임할 수 있죠”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지난 3월 29일에는 ‘세금 31억을 쓰고도 시민 푸대접한 서울시 패션쇼’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구매자와 언론 그리고 소수 VIP만 참여하는 ‘고급화’된 세계 4대 컬렉션을 목표로 한 서울패션위크가, 서울시의 예산지원과 시민참여의 ‘대중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해결하지 못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였다.

“서울시가 31억을 들여서 이번 행사를 진행했는데, 혈세 국민세금 시민세금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서울 패션위크가 서울 시민의 축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세계적인 컬렉션을 목표로 하는 서울패션위크가 우선 시민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어폐가 있어요. 지난번 열린 시민이 옷을 만드는 부대행사 등은 이런 컬렉션의 의미를 잘 못 알고 벌어진 것이에요. ‘쇼’라는 측면에 오해가 큰 부분인데, 이건 철저한 사업이자 산업이에요. 따라서 이런 예산과 관련한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뉴욕처럼 디자이너도 돈을 내서 각자 규모에 맞게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대신 뉴욕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진행하니까 전체적인 홍보나 광고를 통해 컬렉션을 활성화 시키죠”

그는 서울패션위크의 본보기로 꼽혀온 뉴욕 역시 시민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가령 브라이언 파크나 링컨센터에서 패션쇼를 진행할 때도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그가 패션투데이를 거쳐 창간호부터 참여한 하퍼스 바자 코리아에서 기자로 일할 무렵, 입석 표를 받은 밀라노 컬렉션에서는 결국 자리가 없어 모니터를 보며 취재한 일을 회상했다.

“다른 메이저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뉴욕 역시 언론과 구매자에게 한정돼 열려요. 그러다 보니 예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자금을 대주는 건 아니지만 대신 편의를 봐주겠다고 나섰죠. 도나카란이 길을 막고 쇼를 하겠다고 하면 도와주고요. 우리가 4대 컬렉션을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일반인이나 학생이 들어가는 그런 컬렉션은 없어요. 서울패션위크가 패션학도들의 장도 아니고 또 빈자리를 메꾸는 것도 잘못된 거죠. 자기 옷을 볼 고객이 50명밖에 안 되면 뉴욕처럼 작은 카페를 빌리면 돼요. 옷이 독특하면 올 사람은 오거든요. 신진들은 지하에서 옥상에서 독특하게 쇼를 열고, 그러다 이후에 뜬 친구들도 있어요. 이처럼 쇼를 한정짓지 말고, 많은 장소에서 하되 대신 50% 정도만 지원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해요. 지금처럼 서울시가 다 해버리면 다양성이 죽는 거죠. 외국 구매자도 굳이 시가 돈 주고 부를 필요도 없어요. 그건 디자이너의 몫인 거예요. 구매자가 와서 사 가는 거니까 자기가 투자를 해야죠”
 기사의 2번째 이미지

2012 뉴욕 패션위크 DKNY 봄/여름 컬렉션

그는 얼마 전까지도 우리 패션계의 화두는 대중화·산업화·세계화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일본과 체결될 FTA 등으로 당장 값싼 의류가 들어올 것이 명백한 지금, 국내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대중화에서 고급화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어도 사후에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디자이너가 많은 우리 풍토에서 과연 외국처럼 역사를 가진 패션의 고급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스쳐 갔다.

“1970년대 초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는 파리의 오뜨꾸뛰르가 비싸지며 기성복 중심의 프레타포르테가 생길 때, 끝까지 장인으로 남겠다고 회사를 접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를 통해서 부활한 거거든요. 이처럼 한 브랜드가 비상하다 없어지고 하는 건 기업의 생리에요. 하지만 우리는 이신우 옴므의 경우 채권단으로 넘어간 후 그 브랜드를 누군가 사서 좋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채권 회수를 위해서 시장 옷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거죠. 좋은 예는 구호 같은 경우에요. 제일모직에서 인수하면서, 잘나가던 브랜드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해서 디자이너 정구호를 다시 영입하면서 살아났거든요”

한편 그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날로 커지는 SPA 브랜드를 통해 이미 패션의 산업화는 양극화의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우리 패션 역시 이제는 산업화 대신 젊은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유통’의 문제를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패션쇼에 국내 구매자가 없잖아요. 외국은 백화점이 매입을 하는데 우리는 위탁판매를 해요. 따라서 디자이너들이 백화점에 입점해도, 35~40%의 수수료를 주고 거기다 매장 직원 인건비까지 챙겨주면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은 국내 백화점에서 빠지는 분위기예요.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백화점에 들어갔다는 게 일종의 훈장이었어요. 광고해도 어느 백화점에 들어갔다고 자랑했죠. 그러다 보니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심지어 단독 매장이 아닌 편집 매장을 해도 남는 게 없으니 결국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거죠. 외국 구매자는 주문하면 먼저 50%를 입금하고 선적하면 나머지를 넣어줘요. 그러니까 재고 부담도 없고 물량도 확보되고 깔끔하죠. 그러니까 계속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또 인터넷쇼핑몰이나 티브이 홈쇼핑도 있고요. 이렇게 백화점의 불공정한 유통채널을 깨기 위해 젊은 디자이너들은 움직이고 있어요”
 기사의 3번째 이미지
패션의 세계화는 결국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스타 디자이너 탄생에 대한 소망과 연결된다. 하지만 이세이 미야케와 꼼데가르송 등을 성공하게 한 일본의 경우, 철저히 자국에서 검증된 디자이너들에 많은 투자가 집중된 끝에 뜻을 이뤘다는 지적이 있다. 즉 우리 역시 패션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섣부른 각자의 도전보다는 먼저 국내 스타를 선정해 패션산업의 지원을 집중하자는 의견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패션의 주변국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상승한 부분도 있어요. 또 디자이너는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거예요. 우리나라 소비자는 명품을 광적으로 좋아하고,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제품도 온라인쇼핑몰이나 여행을 통해서 이미 다 들어와 있죠. 적어도 소비자들의 구매 환경과 취향도 세계화됐다면 지금은 디자이너가 좇아가는 거에요. 예전 청담동 부티크가 40~50대 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지금 젊은 친구들은 또래인 20~30대를 생각하고 옷을 만들어요. 그렇게 많이 발달했고 외국 가서 조사도 하고 쇼도 해서, 젊은 디자이너들의 감각은 거의 올라왔어요. 문제는 가치에요. 같은 원단에도 우리는 50만 원을 받는데 외국이 200만 원을 받는다면 결국 가치를 올려야겠죠. 옷 만드는 실력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001년 파격적인 노래와 안무의 노래 ‘새’를 들고 나온 싸이는, 다사다난한 인생사 끝에 2012년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했다. 서울패션위크 마지막 날 만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인 디자이너 이상봉은 싸이의 성공 뒤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류 붐을 조성했던 보아와 동방신기 등이 있었다며, 우리 패션산업 또한 이런 ‘붐’에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2013 서울패션위크 이상봉 가을/겨울 컬렉션

“90년대 초중반부터 우리나라가 디자이너들이 파리에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를 잘 몰랐고, 또 진태옥은 조선백자, 이신우는 고구려, 앙드레김은 신라 등의 주제를 가지고 갔죠. 물론 그들로서는 한국이란 나라도 패션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됐지만, 그렇게 전통이 강한 의상을 평소에 입기에는 부담이 있었죠. 그러다 이제는 완전한 기성복으로 접근해 가고 있는 거예요. 파리 패션계도 한국에 제법 알려졌으니까 컬렉션을 나가도 전략적으로 가는 거죠. 이상봉도 벌써 10년째니까 20번 쇼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근데 이상봉 선생님이 성공한 건 한글패션이었어요. 그것이 시사하는 건 우리가 세계 패션시장에서 최고가 되려면 아직 어렵다는 거예요. 패션의 뿌리가 우리가 아니므로, 그러자면 결국 독특해야죠. 보통 한글을 생각하면 훈민정음부터 떠올리지만 그걸 장사익이 흘림체로 썼을 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거죠. 외국인들 눈에는 이게 한자인가 싶기도 하고 한국도 자기 글이 있어 하면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거죠. 초기에는 안감에만 조금 집어넣고 그랬는데 점점 노출되면서 화제가 됐어요. 그 자체가 우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거니까요. 결국 우리 디자이너는 자신의 유일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싸이 역시 외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춤과 노래를 하니까 전 세계에 통할 수 있었던 거죠. 패션도 그래야 해요. 어설프게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다는”

끝으로 최근 한국 학생들이 외국 유명 패션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의류직물학과와 패션디자인학과 및 의상학과 등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우리 현실을 설명했다. 또한 1960년대 초반 패션계에 뛰어들어 2010년 사망한 앙드레김조차 아직 연구가 미비한 것처럼, 실무경험이 부족한 강단의 현실 인식이 이런 유학 붐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발렌시아가에 간 알렉산더 왕을 마치 동네 오빠처럼 이야기하는 제자들을 보며 희망을 품는다는 그는, 여전히 군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는 열혈 패션기자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뉴시스 제공]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hotnews

최신기사

이슈포토

스타일링

연예